...백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목격담에 따르면, 키가 크고 어두운 형상이 파인밀스 숲과 호수에 나타나곤 하는데. 눈에는 샛노란 불이 일렁이고 가슴에는 시퍼런 얼음이 서려있다고 한다... 지역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워터맨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마을에 홍수가 닥쳤을 때, 물에 빠진 아내를 구하기 위해 급류 속으로 뛰어들었던 남자. 아내의 시신은 발견되지 ...
잠에서 깬 정국은 조금씩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속의 물이 얼어붙었던 걸까. 뚝뚝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팔목과 발목, 어깨와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정국은 신음 같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지민의 침대는 바로 건너편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벽을 보고 웅크린 형태가, 옅은 달빛 아래 작고 고요하다. 정국은 느린 동작으로 지민의 침대 옆에...
여름의 프린스턴은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우거진 나무의 고요한 초록빛, 깨끗한 거리와 웅장한 저택, 미묘하게 바가지 씌우는 가게, 조용하고 한결같은 후천적인 우아함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느낀 것은 바로 이 냄새의 부재였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잘 아는 다른 미국 도시들이 뚜렷한 냄새를 가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필라델피아에서는 퀴...
현재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만 여섯. 온전한 시체는 단 한 구도 없었다.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무슨 일이 일어나고야 말 것 같은 불길한 세기말에 어울리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강력 범죄 현장에 출동한 경험이 적지 않았지만 이처럼 끔찍한 범죄는 처음이었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자꾸 구토가 올라왔다. 나는 삽을 땅에 찔러 넣다 말고 현장을 등진 ...
아무리 단단한 쇠로 자물쇠를 걸어 둔들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는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부수고 들어왔으니까. 그것은 내게 몸과 마음을 강요하던 그의 태도와 닮아 있었다. 나는 살갑고 평화롭게 그를 사랑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나의 정체성을 부수고, 짓밟고, 무너뜨리며 사랑한 까닭에. 나는 결국 그를 사랑하고 난 뒤에도 정신적으로 너덜거리는 기분을 감당해야만 했...
[태형아. 저 사람 좀 봐. 술 취했나 봐] 조수석에 앉은 지민이 말했을 때, 나는 이미 그녀를 보고 있었다. 보슬비를 맞으며 한 여자가 거리를 비틀비틀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게] 지민에게 대꾸하며 오히려 여자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오래 쳐다볼만큼 흥미있는 광경은 아니었으니까.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었다. 나는 차를 세웠다. 거리는 이미 어둠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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